YAP 4인 기획 초대전 '완전한 불완전'
- 이유치, 채정완, 최은서, 허진의
이유치_당신의 본분_2020
채정완_모두가감독_2019
최은서_forest10_2017
허진의_초록빛_2020
1. 이런 소재나 주제로 작업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이유치:
제 작업은 어렸을 때 아버지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이야기를 시작하게 됩니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은 가장으로서 아버지가 어깨에 짊어지고 가야할 무거운 짐이었기에 밤낮없이 매일 운전대를 잡으셨고, 그로 인해 양손에는 오랜 노동의 흔적으로 굳은살이 가득했습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모습은 제게 영웅이었고, 이것을 토대로 아버지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채정완:
이런 주제로 작업을 시작하게 된 건 군복무 시절부터였습니다. 군대라는 폐쇄되고 비합리적인 문화에 큰 불만들이 있었으나 그것에 대해 개인이 표현하고 변화를 이루기에는 힘든 공간이었고, 그런 불만과 답답함을 작품을 통해 표현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사회인이 되니 사회 역시 군대 문화에 못지않게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 문제점들이 널려있었습니다. 저는 그 문제점들을 작품을 통해 표현해 나감으로써 한 번 더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이런 불만에 대한 작업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최은서:
대학원 때 영감이 되었던 작품들의 색감이나 스타일을 처음에는 일부 모방하는 형식으로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리다 보니 시각적인 표현 방법은 계속 변했지만, '결핍이나 욕망에 관한 주제는 늘 마음속에 존재했구나'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작가가 처음부터 무엇을 어떻게 그려야지, 하고 확실하게 노선을 정하는 경우는 사실 잘 없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은 그림을 그려가면서 여러가지 경험이나 내면에 대한 연구를 통해 점차적으로 그리고 싶은 것과 나란 사람을 알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허진의:
자아가 형성될 때부터 아마도 제게 인간은 꽤나 매력적인 주제였던 것 같습니다. 이상과 현실에서 오는 괴리감이나 작은 감정, 큰 폭발, 유유히 흘러가는 모든 시간 속에서 변화되는 모습들을 고집스럽게도 지키려는 나. 그건 때론 이상형이자 또는 혐오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며, 그 모든 것을 결국에는 인정하고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나를 더욱 알고 싶고 사랑하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큽니다.
2. 작업에 영감을 주는 좋아하거나 혹은 존경하는 작가는?
이유치:
독일의 여성 판화가인 케테 콜비츠의 작업에 영감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는 민중의 삶을 그렸고, 가난, 전쟁 등 사회 문제들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작가였습니다. 특히 '그저 평범한 삶을 살다가 거대한 사건의 깊은 서사 속으로,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 작은 사람의 역사를 쓴다'라고 책에서 말한 부분이 제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와 일맥상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채정완:
다른 작가들한테 특별히 영감을 받지는 않습니다. 좋아하는 작가는 르네마그리트, 베이컨, 뱅크시를 좋아합니다.
최은서:
예전에는 프랜시스 베이컨을 매우 좋아했고, 요새는 에드워드 호퍼나 호크니 등 현대사회의 모던한 풍경을 그리는 작가들의 작품이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허진의:
에곤쉴레
3.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는가?
이유치:
이번 전시에서 제일 큰 작품인 '그의 일상'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과 사진 찍었던 날이 매우 더운 날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흔쾌히 촬영에 응해주시면서 제가 가져갔던 옷으로 환복도 해주시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슈퍼맨이었던 제 아버지를 제일 대변해주었던 작업이었습니다.
채정완:
특별히 더 애착이 가는 작품은 없습니다.
최은서:
대학원 때 제작한 'discarded lumps' 라는 작품과 숲시리즈의 초기 작업인 'look out the window'라는 작품을 제일 좋아합니다. 각각 완전히 다른 분위기지만, 제 작업 스타일의 어떤 지점을 제일 잘 반영하는 작품들인 것 같습니다.
허진의:
2011년에 완성한 ‘멀리서 온 소년' 작품. 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동경을 형상화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25살의 나에게는 없다고 생각했던 그때의 모습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4. 앞으로의 작품활동 계획이나 새롭게 시도하고자 하는 작업방향이 있다면?
이유치:
앞으로 더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에 대해 작업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보고 소통할 수 있는 예술적 경험을 느끼게 하고 싶습니다. 개인의 기억과 모습은 개인의 이야기로만 남지 않고, 이것들이 모여 집단의 이야기로, 나아가 우리 시대 역사의 한 단편으로 이어지는 여러 프로젝트를 기획 중입니다.
채정완:
당장은 아니지만 앞으로는 표현 매체의 다양성을 늘려가고자 합니다. 페인팅 뿐 아니라 영상이나 입체 분야도 작업해보고 싶습니다. 주제는 지금과 같이 계속 사회의 문제에 대한 것에서 크게 변할 것 같지 않습니다.
최은서:
초현실주의 느낌으로 그림을 볼 때 뭔가 묘한 시각적인 분위기를 주는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허진의:
가려진 얼굴에서 오는 익명성으로 제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5.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이유치: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 사회를 작품에 담음으로써 누군가를 떠올리며 한줄기 희망을 비춰주었던 작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채정완:
시대를 읽을 줄 알았던 작가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최은서:
어려운 질문이네요. 일단은 작업을 중단하지 않고 꾸준히 해야 나란 사람을 기억해주겠죠? 가늘고 길게 가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저 작가 아직도 활동하고 있구나'라고 기억되면 성공일 것 같네요.
허진의:
특별한 마음은 없지만 요즘에는 재밌게 자기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6. ‘완전한 불완전’ 단체전을 준비하고 진행하며 느끼는 바가 있다면?
이유치: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4명의 작가가 만나 함께 전시의 방향성을 이야기하고, 그 소통의 결과물로 '완전한 불완전'이라는 하나의 제목을 끌어와 한 공간에서 전시하는 자체가 의미 있었습니다. 작가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
채정완:
처음에는 서로 성향이 다른 네 작가들이 모여 한 가지 주제를 가진 전시를 기획하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서로의 작업을 공유하며 바라보니 각자가 이야기하는 바가 다르더라도 그 주제의 기저 안에서는 어느 정도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음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최은서:
같이 YAP에 소속되어있지만 세분 작가님들과 단체전을 하게 된 건 처음인데, 시각적으로 완전히 다른 분위기지만 접점이 있는 주제로 함께 전시를 하게 되어서 굉장히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허진의:
그룹전을 늘 함께 했던 YAP 멤버들과 이렇게 4인으로 묶어졌을 때 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서로에게 시너지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제일 크고, 또 다른 기획으로 전시를 하고 싶습니다.
7. 마지막으로 ‘완전한 불완전’ 전시를 보는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유치:
불완전에서 완전으로 향하는 작가들의 작업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얻고 관객들과의 소통의 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채정완:
완전한 불완전 전시는 불완전한 상태의 '우리'들에 대한 전시입니다. 자신의 불완전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그 모습마저 자신으로 인정하고 오히려 자신감 있게 드러낸다면 그 불완전했던 모습이 오히려 자신이 바라던 완전한 모습에 더 가까울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최은서:
이번 전시의 주제는 사실 새롭거나 특별한 건 없지만, 뭔가를 향해 달려가면서도 늘 공허함을 느끼는 현대인 모두가 일상생활에서 생각하고 곱씹게 되는 주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올해는 모두에게 힘든 한 해지만, 매우 사소한 일상의 어떤 순간을 통해 잠깐의 힐링이 되거나 성찰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허진의:
불완전함을 느끼는 건 보다 완전하고 싶은 욕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하게 살기 쉽지 않은 세상에서 이 전시는, 자신의 욕망에 한발 가깝게 다가서는 전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인터뷰 진행: 정숙빈>